취미와독서

가을 향연

풍심 2016. 11. 1. 02:10
가을 향연

풍심

가을 빛 닮은 지붕과 담장이 운치있는
이국 어느 마을에 가을 축제가 열렸다
검붉은 포도로 담근 vino
노오란 감자와 밀을 갈아 부친 lokše
양배추와 고기를 넣어 푹 끓인 gulaš
아코디언 가락과 사람들의 수다가
하모니 되어 마을 밖으로 퍼져 나간다
털수북한 흰둥개와 회색 눈빛 검은 고양이
함께 어울려 지나가는 이에게 꼬리 흔든다

찬바람 불어 나뭇잎 가볍게 흩날릴 즈음엔
이국 마을 공동 묘지에 촛불들이 켜졌다
깊이 잠든 이들의 무덤 위에 놓인
하얀 노란 주홍 국화 한아름
익살맞게 조각된 황금 호박에 한웅큼 갈대
은은한 교회 종소리와 간절한 기도소리가
죽은 혼을 깨우는 주술되어 묘지를 맴돈다
은빛머리 할머니 지팡이 집고 묘지거닐 때
금발머리 손자손녀 키득키득 뒤따라간다

강렬히 비추던 인연의 빛줄기 희미해지면
함께 지내온 것들과 안녕해야 함을 알고도
나무들은 더 깊은 내면의 빛깔 드러내며
밝고 환하고 의연하게 세상에 서 있다
만남과 헤어짐의 경계는 낙엽 한장 차이!
아, 누가 이 계절을 쓸쓸하다 하는가!
저 들과 산 곳곳 오색찬란한 향연을 보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열어 두면
흥미로운 초대장들이 한무더기 날아온다